태국 방콕의 불교 사원. 정식 이름은 왓 프라 체투폰 위몬 망클라람 랏차워람아하위한으로 길이가 46m에 달하는 거대한 와불로 유명하다. 참고로 '왓 포'라는 이름은 사원의 옛 이름인 '왓 포타람'의 약칭이다. 왓 포는 인근의 왓 프라깨오 등과 함께 태국에서 가장 격이 높은 사찰들 중 하나이다. 라마 1세가 처음 지어 자주 법회에 참석한 것으로 유명하고, 나중에는 라마 1세의 유해도 일부 봉헌하기도 했다. 이루 라마 3세 시기에 현재의 모습으로 거대하게 증축되었다. 현재 왓 포에는 거대한 와불상을 포함한 태국 최대 규모의불교 미술품이 소장되었고 태국 최고의 공공 교육기관들 중 하나이자 유명한 정통 마사지가 시작된 유서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이같은 역사성 덕분에 현재 왓 포에 소장된 여러 불화와 불상들, 각종 경전들은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1782왓 포는 방콕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들 중 하나로 심지어 1782년 라마 1세가 방콕으로 천도하기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 원래 이름은 '왓 포타람'으로 보리수의 사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정확하게 왓 포타람이 언제 건립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논란이 있지만 보통 1688년부터 1703년까지 아유타야 왕국을 다스린 페트라차 국왕 시절에 지어진 것으로 게 중론. 1688년에 아유타야 군대가 방콕 공성전에서 프랑스 군대를 몰아낸 이후, 프랑스의 군사요새를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새롭게 사원을 세웠다는 것이다. 1767년에 아유타야 왕국이 미얀마의 꼰바웅 왕조에게 멸망당하자 태국에는 잠시 동안 난립기가 찾아왔다. 이 난립기를 끝낸 사람은 바로 톤부리 왕조의 딱신 왕이었다.톤부리 왕국을 세운 딱신 왕은 수도를 톤부리로 정하고 차오프라야 강 인근의 왓 아룬 바로 옆에 자신의 왕국을 지었다. 당시 왓 포는 딱신의 왕궁 바로 옆에 있었고, 왕이 직접 사찰을 자주 드나들었던 덕분에 왓 포의 권위는 수직상승하게 된다. 그러나 딱신 왕은 시간이 흐를수록 총기를 잃고 폭정을 펼쳤다. 결군 딱신 휘하의 장군이었던 라마1세가 쿠데타를 일으켜 딱신 왕을 몰아내고 새로운 왕조를 열었으니, 이 왕조가 바로 현재 태국 왕실의 짜끄리 왕조이다.1782년 라마 1세는 수도를 차오프라야 강 건너편인 방콕으로 옮기고, 왓 포 바로 근처에 왕궁을 지었다. 1788년에 라마 1세는 오래된 왓 포 사원을 아예 통째로 개건하라고 명령하고, 아유타야, 수코타이 등지에서 공수해온 수많은 불교 미술품들을 이 곳에 보관했다. 1801년, 공사가 시작한지 12년 만에 왓 포의 재건 공사가 끝났다. 라마 1세는 새로운 사찰의 이름을 '왓 프라 체투폰 위몬 망클라람'으로 정했고, 왕국에서 가까운 왓 포에 자주 드나들면서 법회에 참석하고는 했다고 전한다. 왓 포는 라마1세의 대공사 이후에도 260여 년 동안 꾸준하게 개보수 공사를 거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라마 3세 시절에 16년에 걸려서 대규모로 개축공사가 이루어진 바 있으며 이때 사원 부지의 규모가 무려 22에이커로 크게 확장되었다. 누워있는 와불상 등을 포함한 현재 왓 포 내부의 건축물들 대부분은 이때 지어졌다. 뿐만 아니라 사원의 외벽에 여러 기록들과 비문들을 새겨 사람들을 위한 공공교육 시설을 겸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이 기록과 비문들은 후에 역사성을 인정받아 2008년 2월 21일에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오랫동안 공공교육시설로 기능했던 왓 포는 사실상 태국의 첫 대학으로 여겨지며,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타이 마사지의 중심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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