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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여행,태국 왓포사원 개요,왓포사원 역사,왓포사원 내부

태국 여행

by 트레블메이 2023. 2. 21.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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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왓포 사원 전경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왓포 사원입니다.입장 복장은 너무 노출하지 않으면 거의 가능합니다. 입장권은 200바트로 8,000원 조금 안되는 가격입니다. 입장시간은 월 8:30~17:30 , 화~일요일 8:30~17:00 한시간이면 다 둘러볼수있습니다.

왓포사원 개요

태국 방콕의 불교 사원. 정식 이름은 왓 프라 체투폰 위몬 망클라람 랏차워람아하위한으로 길이가 46m에 달하는 거대한 와불로 유명하다. 참고로 '왓 포'라는 이름은 사원의 옛 이름인 '왓 포타람'의 약칭이다. 왓 포는 인근의 왓 프라깨오 등과 함께 태국에서 가장 격이 높은 사찰들 중 하나이다. 라마 1세가 처음 지어 자주 법회에 참석한 것으로 유명하고, 나중에는 라마 1세의 유해도 일부 봉헌하기도 했다. 이루 라마 3세 시기에 현재의 모습으로 거대하게 증축되었다. 현재 왓 포에는 거대한 와불상을 포함한 태국 최대 규모의불교 미술품이 소장되었고 태국 최고의 공공 교육기관들 중 하나이자 유명한 정통 마사지가 시작된 유서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이같은 역사성 덕분에 현재 왓 포에 소장된 여러 불화와 불상들, 각종 경전들은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왓포사원 역사

1782왓 포는 방콕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들 중 하나로 심지어 1782년 라마 1세가 방콕으로 천도하기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 원래 이름은 '왓 포타람'으로 보리수의 사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정확하게 왓 포타람이 언제 건립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논란이 있지만 보통 1688년부터 1703년까지 아유타야 왕국을 다스린 페트라차 국왕 시절에 지어진 것으로 게 중론. 1688년에 아유타야 군대가 방콕 공성전에서 프랑스 군대를 몰아낸 이후, 프랑스의 군사요새를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새롭게 사원을 세웠다는 것이다. 1767년에 아유타야 왕국이 미얀마의 꼰바웅 왕조에게 멸망당하자 태국에는 잠시 동안 난립기가 찾아왔다. 이 난립기를 끝낸 사람은 바로 톤부리 왕조의 딱신 왕이었다.톤부리 왕국을 세운 딱신 왕은 수도를 톤부리로 정하고 차오프라야 강 인근의 왓 아룬 바로 옆에 자신의 왕국을 지었다. 당시 왓 포는 딱신의 왕궁 바로 옆에 있었고, 왕이 직접 사찰을 자주 드나들었던 덕분에 왓 포의 권위는 수직상승하게 된다. 그러나 딱신 왕은 시간이 흐를수록 총기를 잃고 폭정을 펼쳤다. 결군 딱신 휘하의 장군이었던 라마1세가 쿠데타를 일으켜 딱신 왕을 몰아내고 새로운 왕조를 열었으니, 이 왕조가 바로 현재 태국 왕실의 짜끄리 왕조이다.1782년 라마 1세는 수도를 차오프라야 강 건너편인 방콕으로 옮기고, 왓 포 바로 근처에 왕궁을 지었다. 1788년에 라마 1세는 오래된 왓 포 사원을 아예 통째로 개건하라고 명령하고, 아유타야, 수코타이 등지에서 공수해온 수많은 불교 미술품들을 이 곳에 보관했다. 1801년, 공사가 시작한지 12년 만에 왓 포의 재건 공사가 끝났다. 라마 1세는 새로운 사찰의 이름을 '왓 프라 체투폰 위몬 망클라람'으로 정했고, 왕국에서 가까운 왓 포에 자주 드나들면서 법회에 참석하고는 했다고 전한다.  왓 포는 라마1세의 대공사 이후에도 260여 년 동안 꾸준하게 개보수 공사를 거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라마 3세 시절에 16년에 걸려서 대규모로 개축공사가 이루어진 바 있으며 이때 사원 부지의 규모가 무려 22에이커로 크게 확장되었다. 누워있는 와불상 등을 포함한 현재 왓 포 내부의 건축물들 대부분은 이때 지어졌다. 뿐만 아니라 사원의 외벽에 여러 기록들과 비문들을 새겨 사람들을 위한 공공교육 시설을 겸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이 기록과 비문들은 후에 역사성을 인정받아 2008년 2월 21일에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오랫동안 공공교육시설로 기능했던 왓 포는 사실상 태국의 첫 대학으로 여겨지며,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타이 마사지의 중심지기도 했다.

왓포사원 내부

프라 우보솟: 왓 포 전체에서 가장 신성한 건물이다. 라마 1세가 아유타야 양식으로 지었으며 이후 라마 3세 재위기에 크게 확정 공사를 했다.내부에는 기둥들이 열을 이루어 지붕을 떠받치고 있고 거대한 금동 불상이 끝 연단 위에 앉아 있다. 불상의 머리 위에는  국왕의 권위를 상진하는 9층 우산이 씌워져 있다. 건물 외벽에는 태국 전통 서사시인 '라마끼엔'의 내용이 150개 돌들에 새겨져 있다.

 

위한 프라논: 푸른빛 지붕의 건물 왓 포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와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보통 왓 포를 찾은 관광객들은 대웅전에 해당하는 프라 우보속과 위한 프라논 건물만 보고 돌아 가는 경우가 많다. 내부에는 부처의 일생을 담은 벽화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위한 프라논 인근에는 스리랑카에서 기증한 보리수가 있는 중국식 정원이 있다.
와불상 : 위한 프라논 내부의 거대한 금빛 와불상. 1832년 라마 3세 시기에 만들어졌으며 부처가 열반에 이르기 직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높이는 15m, 길이는 46m이고 태국에서 가장 큰 불상들중 하나이다.
프라 라비앙 : 라마 1세가 태국 전역에서 모안 온 불상 1200좌 중 예술석이 뛰어난 400좌를 골라 전신한 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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